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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행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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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장은 읍·면에 속한 행정리 단위의 마을을 대표하는 행정가이다. 마을의 공무, 주민 치안, 범죄 예방, 농사 지원, 재해 복구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존재해 왔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이장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존재하여 지방 행정의 기초 단위로 기능했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에 도입되어 에도 시대에는 문화적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폐지되었다. 이장은 낮은 수당과 과중한 업무, 일부 이장의 부정부패, 귀농·귀촌인과의 갈등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2. 역사

이 제도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춘추 시대부터 명나라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도 나라 시대·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다. 국가, 지역, 시대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어, 후대의 촌장에 가까운 마을의 촌장인 경우도 있고, 촌장의 보좌역 또는 마을 관리인인 경우도 있는 등 다양했다. 이정은 에도 시대 촌장의 원형이 되었고, 촌장의 대명사로도 사용되었지만 번에 따라 약간 취급이 달랐다. 메이지 유신 이후 촌장을 폐지하고 이정을 설치했지만, 곧 폐지되어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2. 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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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중국

이 제도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춘추 시대부터 명나라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확인 가능한 바로는 주나라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에는 8가구가 공동 경작(정전제)을 하는 것을 하나의 '리'라고 하였다.[3] 이것이 제대로 기능했는지, 이정에 해당하는 직책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진나라·한나라 시대부터 이정이 확실하게 나타난다. 진나라 시대에는 이정(리전) 등이 존재했고, 리가 호적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4] 진나라의 가혹한 정책으로 인해 범죄를 은폐하면 연좌되는 등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졌다.[5]

유방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유방은 부로들의 지지를 받아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법을 3장으로 간소화했다.[6] 이정의 상사인 정장, 그 위에 부로가 있었으며,[7] 이들은 왕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후 이정들은 처벌 대상에서 삼로 등의 계통으로부터 도덕 교육을 받는 위치로 변화했다.

당나라 시대에는 이정이 매년 초 호주가 작성한 호구와 전택을 신고하는 일에 관여하여,[8]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라 시대 전반까지 이정은 주민 대표이자 백성의 최상위였지만, 한나라 중반부터 지방 관료 기구에 편입되어 최하위 관직으로 간주되었고, 치안 유지나 납세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정의 범위도 변화하여, 고대 중국(정전제)에서는 8가구였던 것이 춘추~전국 시대에는 25호, 80호 등으로 바뀌었고, 한~당 시대에는 100호, 명나라 시대에는 110호가 되었다.

2. 3. 일본

일본은 나라 시대·나라를 본떠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리세이(里正)는 리초(里長)로 이름을 바꾸고 호수도 50호로 시행되었지만, 곧 리초는 향장(郷長)으로 바뀌었고, 향장 아래에 리세이를 별도로 설치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리세이는 폐지되는 지역과 존속하는 지역으로 나뉘었고, 폐지된 지역에서는 "쇼야(庄屋)", "키모이리(肝煎)", "나누시(名主)" 등을 멋스럽게 바꿔 부르는 당명(唐名)으로도 사용되었다. 리세이를 폐지하지 않은 번(藩)에서는 공식적으로 직함이 존속했지만, 쇼야를 통괄하는 오조야(大庄屋)를 가리키거나, 쇼야와 동등하거나, 쇼야의 보좌역을 맡는 등 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쇼야 제도가 폐지되자, 이를 리세이로 고쳤지만 곧 폐지되어 그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에도 시대의 쇼야 등이 리세이를 칭할 때는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문화·교양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에도 시대의 출판물에서 이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한문 등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칭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재력과 교양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사업, 교육 사업에 참여하거나 배우는 것을 지원했다. 에도 시대 후기 이시자카 소테츠 저서 "침구설약(鍼灸説約)"(1811-1812) 후기에는 "문인 강좌(江左) 리세이(里正) 다나카 노부유키(田中信行) 식"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이시자카 소테츠의 문인, 강좌(지역명)의 리세이 다나카 노부유키가 썼다"는 의미이다. 이시자카 소테츠는 쇼군의 침의(어전의, 御典医)로 당시 유명했으며, 당시 귀중한 서적의 후기를 맡는다는 것은 명예였고, 많은 것을 배운 증거였다. 이처럼 에도 시대에는 교양 높은 인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교양이 풍부한 영향인지, 막말에 이르러서는 메이지 유신의 지사로 활약한 자도 많다. 에도 시대의 리세이는 대부분 농민 계급이었지만, 일부는 의제 무사 계급(고우시, 郷士) 또는 무사였다. 리세이 출신의 저명인사로 나카오카 신타로 등이 있다(오리세이(大里正), 무사 계급).

3. 직무

시장 및 군수, 읍장 및 면장 다음가는 지역 총책임자이다. 읍면에 속한 행정리 단위의 마을을 총책임하에 관리감독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며, 마을 공무사항, 주민 치안, 범죄 예방, 농사 지원, 재해 복구 지원 역할을 하는 권한을 맡는다.[1]

생각보다 고된 직업이기도 하다. 동사무소처럼 이장 외에 다른 공무원들이 편제되어 있는 게 아닌지라, 무슨 일이 있으면 이민(里民)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이 불편했던 과거에는 주민들의 오만 민원사항을 일일이 읍/면사무소에 가서 처리해 줬는데, 당연히 이장이 민원을 잊어버렸다거나 하면 그냥 답이 없었다.[1] 1950년대 말~1970년대 초반에도 이런 사정으로 출생신고가 늦어져 실제 생년월일과 서류상 생년월일이 달라진 경우가 꽤 된다.[1] 문맹률이 높던 시절부터 이장이 동네 주민들의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통장 등을 보관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민들, 마을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쓰거나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1] 작은 곳이지만 권력이 생각보다 작은 직업도 아니다.[1]

이렇게 일이 많다 보니, 같은 법정리라도 마을이 나눠져 있으면 각 마을마다 이장을 선출하며, 마을이 나눠져 있지 않더라도 아파트빌라 같은 주거밀집지역일 경우 한 마을을 여러 단위로 이장이 대여섯 명 이상 있는 경우도 많다.[1] 이는 통장도 마찬가지이다.[1]

사람이 적고 서로서로 잘 아는 시골 마을, 혹은 좁은 공간에 인구가 밀집된 아파트 지역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어중간하게 도시화된 읍 지역 주택가에서는 전국 평균(250세대)을 상회하는 수백~수천 세대가 하나의 행정리로 묶여 있는 데다가 주민들끼리도 서로 잘 모르는 경우도 있으니 이장을 보좌하기 위해 지역발전위원을 임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다들 생업이 있어서 전임제 이장도 아닌 지역발전위원은 안 맡으려 하는 경우가 상당수.[1]

농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교양 프로그램을 보면 자주 나오는 장면으로, 마을회관이나 이장의 자택에 설치된 방송 장비로 이장이 간단한 방송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공지사항이나 마을의 특별한 소식 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농어촌의 특성상 주민들을 일일이 한자리에 모아놓고 알려주기가 곤란하고, 그렇다고 이장이 직접 집집마다 찾아다니기도 힘드므로 이런 식으로 방송하는 것이다. 물론 그 외에 방송 장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이장의 재량이므로, 주민들이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음악을 틀어주는 등의 용도로 쓰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걸 이용해서 주민들의 전화를 연결해 주기도 했다. 전화 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물론이고, 1990년대 이후에도 휴대전화가 보편화하기 전에는 주민들이 밖에서 일하느라 집전화를 받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이장이 대신 전화를 받고 방송으로 '김OO 어르신, 외지에 사는 둘째아들한테 전화가 왔으니 와서 받으세요.'라는 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1]

수당은 전국 공통 월 40만에, 설날추석에 상여금(60만)이 지급되고, 회의수당 4만이 별도로 지급된다.[1] 마을이나 동네에서 목소리 떵떵거리는 직책치고는 수입이 많이 낮은 편으로 사실상 용돈 정도에 가까운 금액인데, 일이 궂어서 열정페이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반면에 매년 수천만 원씩 해먹는 이장들도 있다.[1]

이장 중 올바르고 마을을 위해 힘쓰는 이장도 있으나, 이장의 직위를 이용해 용돈벌이 이상으로 부정부패를 저질러 기득권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유튜브에서도 이장 횡령만 검색해도 제도권 언론의 영상이 많이 나오며, 마을기금을 횡령하여 사적으로 이용한 케이스가 많은데다가 뉴스에서 인터뷰를 따면 "몰랐다.", "마을 주민들에게 현물로 챙겨주기 위해서 그랬다.", "마을의 일이다. 신경쓰지도 마라"라는 식으로 회피하기 마련이다.[1]

젊은 층의 유입이 필요한 시골이고 매번 시골이 사라진다며 언론에게 호소하는 곳이 정작 모든 재산을 긁어모아 귀농해서 오는 젊은 유입층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악습 중 하나인 '마을 발전기금'이라는 전국적으로 통상적인 관례성 금액의 돈을 요구하는데, "어디에 사용되고, 왜 내야 하며, 얼마를 기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설명을 요구해도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이장 맘대로에다가, 만약 이를 거부하면 마을 대소사에 초대를 안 주는 등 대놓고 왕따를 시키며 횡포를 부리는 마을도 있다.[1] 이렇다 보니 젊은 층이 사라진다며 호소하면서도 정작 귀농 온 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왕따를 시키는 바람에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등 악순환도 있는데, 이를 보면 사실상 본인들이 쫓아낸 경우도 있다.[1]

2023년에 귀농시도를 한 빠머스라는 유튜버는 귀농하여 2023년에 귀농 브이로그를 찍었지만 이장의 사기 행위와 통수, 마을 사람들의 텃세에 질려 시골 닫힌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조명시키고 고발하는 자가 되었다.[1]

4. 현황 및 문제점

이장은 읍면에 속한 행정리 단위의 마을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으며, 마을 공무, 주민 치안, 범죄 예방, 농사 지원, 재해 복구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장의 업무는 다른 공무원들의 도움 없이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과중하다.

과거 교통과 통신이 불편했던 시절에는 이장이 주민들의 민원을 읍, 면사무소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1950년대 말~1970년대 초반에는 출생신고가 늦어져 실제와 서류상의 생년월일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문맹률이 높았던 시기에는 이장이 주민들의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통장 등을 보관하며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주거 밀집 지역은 한 마을에 여러 명의 이장이 존재할 수 있다. 도시화가 진행된 읍 지역에서는 수백~수천 세대가 하나의 행정리로 묶여 있고, 주민 간 교류가 적어 이장을 보좌하는 지역발전위원을 임명하기도 하지만, 생업 등의 이유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마을회관이나 이장 자택에 설치된 방송 장비를 통해 마을 소식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지사항, 마을 소식 등을 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과거에는 이 방송 장비를 통해 주민들의 전화를 연결해 주기도 했다.

4. 1. 낮은 수당과 과중한 업무

이장은 시장 및 군수, 읍장 및 면장 다음가는 지역 총책임자이지만, 수당은 낮은 편이다. 전국 공통으로 월 40만 원의 수당과 설날 및 추석 상여금(60만 원), 회의수당 4만 원이 지급된다. 그러나 마을에서 영향력이 큰 직책치고는 수입이 적어 사실상 용돈 정도에 불과하며, 궂은 일도 많아 열정페이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반면, 이장 직위를 이용해 수천만 원씩 횡령하는 사례도 있다. 이장 횡령 관련 문제는 유튜브에서도 제도권 언론의 영상으로 많이 다뤄지고 있으며, 마을 기금을 횡령하여 사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장들은 "몰랐다", "마을 주민들에게 현물로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마을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는 식으로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층의 유입이 필요한 시골에서는 '마을 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금액은 명확한 기준이 없고 이장 마음대로 정해지며, 납부를 거부하면 마을 행사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악습으로 인해 귀농한 젊은 층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4. 2. 이장 관련 비리 및 부정부패

이장 중에는 마을을 위해 힘쓰는 사람도 있지만, 직위를 이용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유튜브에서 '이장 횡령'을 검색하면 관련 언론 보도가 많이 나오며, 마을 기금을 횡령하여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1] 이들은 "몰랐다", "마을 주민들에게 현물로 챙겨주기 위해서 그랬다", "마을의 일이다. 신경 쓰지 마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1]

시골에서는 젊은 층의 유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면서도, 귀농해 온 사람들에게 '마을 발전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1] 이 돈이 어디에 사용되고, 왜 내야 하며, 얼마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이장 마음대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1] 이를 거부하면 마을 행사에서 배제하는 등 대놓고 따돌림을 시키는 횡포를 부리는 마을도 있다.[1]

2023년에는 '빠머스'라는 유튜버가 귀농 브이로그를 찍다가 이장의 사기 행위와 마을 사람들의 텃세에 질려 시골의 닫힌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고발하기도 했다.[1]

4. 3. 귀농·귀촌인과의 갈등

일부 시골에서는 젊은 층의 유입이 필요함에도 불구, 귀농·귀촌인에게 '마을 발전기금'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이를 거부하면 마을 행사에서 배제하는 등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행태는 귀농·귀촌을 시도하는 젊은 층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2023년에는 귀농을 시도한 유튜버 빠머스가 이장의 사기 행위와 마을 사람들의 텃세에 질려 시골의 부정적인 면을 고발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부 이장은 직위를 이용해 용돈벌이 이상으로 부정부패를 저지르기도 한다. 유튜브에서도 이장 횡령 관련 제도권 언론의 영상이 많이 검색되며, 마을 기금을 횡령하여 사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많다.

참조

[1] 서적 韓非子 : 全 https://books.google[...] 有朋堂書店
[2] 간행물 東アジアにおける殺牛祭祀の系譜 : 新羅と日本古代の事例の位置づけ https://archives.buk[...] 佛教大学歴史学部
[3] 간행물 「孟子」井田制の経済思想について https://hdl.handle.n[...] 滋賀大学経済学会
[4] 논문 秦漢時代の基層社会支配 https://hdl.handle.n[...]
[5] 간행물 秦の連坐制と「与盗同法」「与同罪」―秦法がとくに牽制する犯罪― http://id.nii.ac.jp/[...] アジア文化研究所
[6] 간행물 法解釈と三段論法 https://hdl.handle.n[...] 信州大学大学院法曹法務研究科
[7] 간행물 中国の社区建設と居民委員会 https://iss.ndl.go.j[...] コミュニティ・自治・歴史研究会
[8] 간행물 古代の戸籍 ―日本古代戸籍の源流をさぐる― https://hdl.handle.n[...] 愛知教育大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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